?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원수도 살리는 다윗의인생관(삼상24장) : 이덕신 목사

 

 

집집마다 가정문화가 다르고, 가정 분위가 다릅니다. 예전에 학창시절에 친구집을 방문하면 어떤 집은 풍성하고 여유 있고 환영하는 분위기로 평안한 집에는 또 가고 싶어집니다. 반면 어떤 집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집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 엄마가 나에게 전도하시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신 기억이 납니다.

사람도 개인 인생관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이익, 자기성공을 위하여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아갑니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아도, 복음이 없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겨우 자기 가정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하나님의 주신 인생관으로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기독교인의 인생관은 섬기는 자로 살아갑니다. 섬김을 넘어 많은 사람의 고통을 대신해서 당해 줄 만큼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인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1. 두 종류의 인생

1) 근본변화가 없었던 인생들

① 사울 왕은 세상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기에 멋지고 훌륭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왕의 직무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다윗 죽이는데 24시였습니다. 블레셋의 공격으로 다윗을 추격하는 것을 잠시 중단한 사울은 블레셋이 물러나자 다시 다윗을 쫓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② 그는 다윗이 엔게디 동굴에 숨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군사 3000명을 인솔하고 엔게디로 향하였습니다.

③ 그들은 ‘들염소 바위’ 근처를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④ 사울은 생리적인 현장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굴 깊은 곳에 다윗이 숨어 있습니다.

⑤ 다윗의 사람들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날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네 적을 너에게 넘겨 줄 테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죽이자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사울과 다윗의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 근본이 변화된 다윗의 인생관

우리의 인생관에 따라 인생의 결과는 다릅니다.

① 다윗은 오늘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사울의 옷자락만을 조용히 베었습니다. 다윗의 인생관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신앙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②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잘라 낸 것 때문에 마음이 찔렸습니다. 사울을 죽이자고 말하는 다윗의 사람들에게 사울은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왕이기에 사울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로 식구들은 있는 것 자랑치 말고, 없는 것 슬퍼하지 말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③ 다윗도 동굴에서 나와 사울의 뒤에서 “내 주 왕이여!”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사울이 뒤돌아보자, 다윗이 얼굴을 땅에 대고 절했습니다.

④ 내 아버지여, 내 손에 들려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십시오. 아버지는 자녀들을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⑤ 다윗은 사울 임금의 생명 을 해칠 좋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경외심을 가졌습니다

 

교회 안에는 변화 된 사람과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2. 영적인 원리를 따라 사는 인생관

1)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의 인생

자고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부하게 하시고, 가난케도 하시며 높게도 하시고 천하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대상29:10-14).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우리의 길을 지도하십니다(잠3:6). 살면서 원하는 일도 일어나고, 때로는 원치 않는 일도 있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허락된 줄 믿습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자녀와 재산, 건강까지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 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거둔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잃어버린 재산도 갑절로,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욥의 자녀들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인정하는 신앙이 아름다운 인생관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해관계를 따지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까지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2) 영적 질서를 아는 다윗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왕을 죽이라고 말하였으나, 나는 ‘내 주는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왕이므로 해치지 않겠노라’고 말했습니다.

 

3) 자기 인생에 대한 확신

나는 왕의 옷자락을 잘라 내기만 하고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자, 이제는 내가 왕에게 어떤 나쁜 일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 주십시오. 나는 왕에게 죄를 짓거나 해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왕은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습니다(삼상24:11).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까? 왕이 뒤쫓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왕은 죽은 개나 벼룩을 뒤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삼상24:14).

 

4) 참된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는 인생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옳고 그름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만이 자신의 재판관이 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의지하였습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인생관

 

1) 어둠에 빛을 비춘 다윗

다윗은 수년 동안 사울의 공격에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원망하지 않고 빛을 발했습니다. 옛 속담에 ‘나쁜 일은 나쁜 사람에게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왕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다윗은 악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왕이 뒤쫓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왕은 죽은 개나 벼룩을 뒤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자세입니다.

 

2) 빛 앞에 어둠이 떠나감(삼상24:16-21)

①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정말 네 목소리냐?” 하고 말하면서 크게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② 사울이 말했습니다. “너는 나보다 옳도다. 너는 나에게 잘해 주었는데, 나는 너에게 나쁜 일을 했구나

③ 너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구나.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④ 네가 오늘 나에게 착한 일을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너에게 상 주시기를 바란다.

⑤ 네가 틀림없이 왕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너는 이스라엘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⑥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내 자손을 죽이지 않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 다오.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다오.”

 

진정한 사울의 회개는 아닙니다. 회개는 일시적인 감정의 반성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사람 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원수를 살리는 인생관이 잡힙니다. 또 5력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나 위하여 사는 인생 되지 말고, 하나님 위하여, 교회 위하여, 후대들을 위하여 헌신하시고 섬기는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종이지만 시대가 급하여 죽은 개와 같고 벼룩같은 저를 이 자리에 세우신 줄 믿습니다. 말에 있지 않게 하시고 종과 함께 하는 모든 식구들 다윗의 인생관을 닮아가는 믿음의 사람들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여 죽은 자를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들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