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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헌금(막 12:41-44) : 이덕신 목사

 

 

우리는 지금 마가복음을 연속해서 강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간표 따라 허락하신 막 12:41-44 말씀입니다.

이 땅의 모든 자연만물들은 다 귀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 어떤 것도 선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생물은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물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원리 아래 있을 때만이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는 땅 속에 내리고 있을 때만이 꽃도 피고 열매 맺으며 식물의 아름다운 가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이 인간의 가치와 존재의미를 나타냅니다.

1.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삶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방법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갈5:16)

3.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거듭나서 영으로 이해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인들을 볼 때 마다 성령으로 재창조된 축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듭난 자들은 새 생명을 갖기 때문에 하늘의 비밀을 사모하고 깨닫고 비밀 속에서 성장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4.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바로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믿어 가면서 체험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 살면서 문제, 사건은 믿는 자, 안 믿는 자에게 다 옵니다. 그런데 믿는 자는 문제, 사건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나’를 발견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거의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며 삽니다. 흑암에게 속힘을 받고 삽니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었고 나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기를 발견했습니다(딤전1:15).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힘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갈2:20). 불신앙속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 된 하나님 자녀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로다(갈6:7)’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에너지 동력으로 잡았습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갈6:8).

자기 중심(창3), 물질 중심(창6), 성공 중심(창11)으로 각인 되었습니다. 열심히 수고해서 물질, 명예를 가져도 하나님 앞에 비춰보면 모두 썩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명예, 권세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보이는 육체의 건강을 추구해도 때가 되면 다 죽습니다. 여러분들이 육신적으로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한들 육신만을 위하여 사는 인생은 썩어질 것만을 구하는 인생이기에 영적인 삶을 추구하라는 내용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요19:31). 다 이루셨다는 말은 이미 값을 치루었기에 원리만 따라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람들이 믿지를 않으니 삼일 만에 다시 태어나셔서 십자가 사건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물질, 명예, 건강이 아닙니다.

 

인생의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부모 없는 영적고아로 태어난 것입니다. 원죄가 문제입니다. 사단의 권세아래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습니다(요일 3:7).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생들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나 중심으로 살아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많아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명예, 권세가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다 복음 앞에는 먼지, 재와 같이 썩어질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혼에 만족함이 있을 때 행복한 줄 믿습니다. 나를 발견하고 환경에 눌리지 아니하고 환경을 정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1.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1) 예배

예배(Worship)라는 말은 ‘가치(Worth)있는 지위’(신분, Ship)에게 적절한 영광과 존경을 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다윗은 항상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여호와가 목자시기에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소통이 참된 예배입니다.

 

2) 예배는 드리는 찬송, 기도, 헌금과 받는 것 말씀으로 구성됩니다.

① 원래는 말씀회복부터 받아야 합니다. 지난 주 구원의 은총아래 거했기 때문에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온 줄 믿습니다. 찬양, 기도, 예물 드리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 말씀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요1:1).

◆ 말씀은 생명의 떡입니다(요 6:35, 48). 생명의 떡인 말씀 없이는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 주의 말씀은 내 길에 빛이요 내 발에 등이 됩니다(시119:105). 우리는 인생을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는 환경은 익숙한 시카고의 삶일지 모르지만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오늘가지 편안하게 살아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조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누가 이겨 나갈 수 있겠습니까? 캄캄한 길을 가도 주의 말씀만 있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줄 믿습니다.

◆ 우리는 썩지 아니할 씨로 새롭게 된 줄 믿습니다(벧전 1:23).

◆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어 모든 것을 새롭게 재창조 합니다(히4:42).

주의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을 귀하게 여겨야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잘 받아야 합니다.

②찬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찬양은 영적노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고, 구주 예수님을 높이고, 성령을 높이고, 회개와 감사, 은혜, 신앙고백, 제자도 고백, 사명 찬양이 있습니다.

③기도가 회복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아뢰는 것입니다. 의식 속에, 무의식 속에 하나님과 소통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속에는 기쁨의 기도, 감사의 기도, 괴로움을 아뢰는 간절한 기도도 있습니다. 네 슬픔을 아노니 주의 성령이 탄식하며 기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롬8:26). 성령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데 우리 문제와 상황을 놓고 왜 우리가 기도하지 못합니까? 예배 속에는 항상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④헌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것이 참된 헌금입니다. 거듭남에 감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2. 본문의 교훈(막12:41-44)

1) 성전에서 헌금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는 예수님

뜰 안에는 놋쇠로 만든 13개의 헌금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었습니다. 반면에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41b~42).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은 부자들과 비교하여 정말로 적은 돈입니다. 한 렙돈은 참새 반 마리 정도 살 수 있는 돈입니다(마 10:29).

 

2) 예수님의 말씀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리고 그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칭찬하십니다. 우리의 고백이 헌금 속에 담겨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3) 마음을 원하시는 에수님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가짐의 정도,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금액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마음과 정성의 헌금인가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지극히 작은 금액의 헌금, 사람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헌금은 하나님 보시기에 많은 헌금으로 평가되었습니다.

①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이요 고백입니다.

②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 바울이 확인시켜 주었습니다(고후 9:6-7).예수님은 “썩어질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6:18-21).

③ 물질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인정하며 감사를 가장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려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나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고백이 헌금입니다. 하나님이 주셨기에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건전한 신앙인들은

1. 신관이 바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성 삼위로 계시고 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2. 물질관이 바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왔습니다.

3. 내세관이 바릅니다.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줄 믿습니다.

 

한 주간 말씀의 성취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저희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저희들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소원합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드려진 모든 예물들이 영혼구원에 쓰임 받는 축복 된 예물로 역사하옵소서. 우리 후대들을 바로 양육하는 축복된 예배당으로, 축복된 영적 에너지로, 축복된 사랑의 에너지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