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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계명 (막12:28-34) : 이덕신 목사

 

 

 

본문 속의 중심인 ‘가장 큰 계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모든 민족과 인류는 타락 이후에 종교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무엇인가를 앙망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체적으로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이 세상에는 여러 다른 신앙의 대상을 신앙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다고 말하는 무종교 주의 사람들도 그 자체가 신앙입니다. 


이번 네팔 선교의 결론은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 민족, 세계, 나라는 저주와 재앙 속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미를 가도 많은 흔적을 볼 수 있지만 특별히 힌두교, 티벳 불교로 가득한 네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저주, 재앙으로 덮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창조주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지만 다른 종료는 사단권세의 힘을 얻는 신앙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 속에 우리 속에 알지 못한 가운데 불신앙으로 나중심의 신앙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인생을 혼미 시켜서 결국 불신자와 같은 삶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몸부림치지만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보이는 문제도 정복할 수 없습니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다면 그 인생은 설령 자기의 목적이 성취된다 할지라도 절대 행복한 인생은 아닙니다.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 떠난 문제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원죄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실존하는 사단의 권세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신자라 할지라도 나의 신앙관이 행여나 나 중심의 창세기3장의 모양을 입고 살아가는 신앙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이는 물질중심의 신앙의 하늘보좌 혜택을 입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공중심의 신앙들 참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로 성경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 중심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해야 합니다. 물질중심, 명예와 성공중심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인간의 참 행복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신앙하면 할수록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은 나에게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원래 나는 저주, 재앙,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완전 타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내기준, 내 사상에 빠져 있는 것은 구원의 축복을 못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나 중심, 물질 중심, 성공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월절을 몇일 앞둔 고난 주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예루살렘을 드나들면서 종교지도자들과 변론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지켜 본 한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비범한 것을 알고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을 했습니다. 계명중에 첫 계명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서기관은 하나님 말씀, 율법을 기록하는 기록자입니다. 유대인들은 613가지의 율법이 있습니다. 248가지는 꼭 해야 되는 율법입니다. 그리고 하지말아야 되는 365가지 율법이 있습니다. 이 서기관은 인생을 고민했던 서기관이었던것 같습니다. 자기가 기록한 613가지의 율법을 자신도 다 지킬 수 없어 많은 율법 가운데 어떤 율법이 가장 중요한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많이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흠 없는 재물을 가지고 모이는 주간입니다. 소아시아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이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모이는 주간입니다. 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제사하는 번제물만 잘 드리면 행복할 줄 알고 멀리서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깨달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 인생을 자기 영혼을 살릴 줄 알고 시행합니다.

 

1. 나의 존재감이 어디서 왔는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1) 서기관의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존재 한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 앉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나의 존재가 나의 어떤 열심, 수고, 지혜나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지금의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이걸 놓치면 지금도 나의 신앙의 나의 중심적 신앙이 되기가 쉽습니다. 나 중심의 신앙에서 빠져 나와야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오늘 밤이라도 내 영혼을 거두어 가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2) 출애굽 사건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들이 했던 일은 지도자의 말씀을 듣고 그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는 일 외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 발라진 집들마다 저주의 권세는 침범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손길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순종치 아니했던 애굽의 가정들마다 장자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잘해서 출애굽 한것이 아니라 사단의 권세 바로는 아들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두 손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가운데 우리가 존재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엡2:14). 

 

3) 우리가 받은 하나님 자녀의 그 신분도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엡2:8).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금 613가지의 계명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 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치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613가지의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인데 그 하나님을 사랑하려면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어떻게 깨닫는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하고 만져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 그리스도의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네팔현장은 너무 안타갑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네팔 선교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 자녀 되는 길 예수님이 그리스도되심 외에는 증거할 것이 없었습니다. 설교를 하고 예수님을 영접 요청을 하는데 상상치 못할 고백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이후에 어찌 그리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지...예수님을 나의 주, 그리스도로 영접만이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는 길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서기관의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치 못하면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2. 나의 참된 가치관을 정돈해야 합니다. 
1) 이 서기관은 613가지 사상화 된 율법 앞에 이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와 첫째 계명이 무엇인가 질문했습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슴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3) 인생의 참된 가치는 공부를 잘하고, 많은 물질을 모르고, 높은 명예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살아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의 인생관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에 방향 맞추어야 될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나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과 방향을 맞추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고백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인생 가치관을 갖자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이땅을 살면서 우리도 이땅을 정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5) 그러나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 속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말씀이 언약으로 삶의 발자취에 성취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마6:33).

 

6) 사도요한은 가이요 장로에게 말하기를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간구했습니다(요삼1:2).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대답 큰 계명은 마음과 지혜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말을 이해했습니다. 이 서기관은 그 어떤 번제물보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깔려 지지 않는 헌신과 봉사는 우리에게 별 유익함이 없습니다. 이 서기관은 정말 예수님의 대답 앞에 축복을 받아 예수님께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는 영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서기관은 대답은 정확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속한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아 목사, 장로, 권사도 되어 오랫동안 주님을 섬기며 헌신도 했지만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주인으로 순간순간 고백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좌의 혜택을 못 누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는 생애 내 힘으로 지어가는 집이 되지 마시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관하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에 방향 맞추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는 가운데 
1. 생명운동의 주역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교회운동의 주역자가 될 때 우리 인생은 형통할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인 후대 운동에 생명을 거는 하나님 사랑의 고백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